[조용호의 문학공간] 언어를 붙들고 구도의 길을 가는 '가랑잎'

문화 / 조용호 / 2021-12-24 16:30:32
새 시집 '황금 가랑잎' 펴낸 최동호 시인
하찮지만 소중한 가랑잎 같은 존재들
보편적 생명의 가치와 본질을 붙들고
지금 이곳 살아 있는 존재들에게 눈길

탁발 나가 빈 절에 밤새 천둥치고 비바람 불었다/ 성난 물살이 산간 계곡 바윗돌들 다 쓸어갔는데/ 댓돌 아래 흙 묻은 흰 고무신에 담긴 맑은 물살/ 비바람에 문 두드리다 떠 있는 황금 가랑잎 부처

법당 안에 고이 모신 줄 알았던 부처, 밤새 천둥치고 비바람 불 때 바깥에서 문 두드리다 댓돌 아래 흙 묻은 흰 고무신에 담긴 빗물에 가랑잎으로 떠 있다. 최동호 시인은 그 가랑잎에서 부처를 보았고, 최근 펴낸 아홉 번째 시집 표제도 '황금 가랑잎'(서정시학)으로 삼았다. 

▲새 시집을 펴낸 최동호 시인. 그는 지금 여기 '살아 있음'에 방점을 찍고 보편적 생명의 근원을 탐색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그는 "부처가 법당 안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탁발나간 중도 가랑잎 같은 존재"라면서 "생명이라는 게 가랑잎 같은 하찮은 존재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더없이 소중한 것이어서 그 이중성을 황금 가랑잎으로 표현해보았다"고 말했다. 그는 연전에 펴낸 '제왕나비'가 생과 사를 이어가는 생명의 연속성에 방점을 찍었다면 이번 시집은 보편적인 생명 그 자체, 지금 '살아 있음'에 무게를 실었다고 했다. 

"결국 부처의 깨달음도 가랑잎 같은 것이라고 보는 거죠. 가랑잎 같은 존재에 대해 깨달아야 인간이 새롭게 거듭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명의 본질은  '나'를 중심으로 보게 마련인데 과연 나라는 게 있는가, 그 나는 있으면서도 없고 없으면서도 있는 존재인 거죠. 하찮은 가랑잎 같은 것도 아무 의미가 없을 수 있지만 굉장한 의미를 지닌 것일 수 있다는, 그런 발견인 셈이지요."

달빛 파도가 밀려오는 바닷가/ 여인숙 문간방/ 파도소리 문틈으로 엿듣는 귀가 미역줄기처럼 자라/ 잠 못 드는 나그네 ('파도 여인숙')

존재의 무거움을 성찰하는 종교적인 분위기의 시에서 벗어난 이런 유의 낭만적인 시편도 있다. 그는 성장을 추구하다보면 방황하게 돼 있다면서, 결국 가랑잎이 그런 것처럼 자신도 지구를 떠도는 나그네인 것이라고 했다. 시인이라는 가랑잎이 '파도 여인숙'에 묵은 것인데, 파도 소리에도 그냥 잠이 들면 시인이 아니라고 했다. 밤새 뒤척여야 시인인 것인데, 그는 '잠 못 드는'이라는 표현 대신 '뒤척이는'을 쓸 것인지 오래 고심했다고 했다. 그는 '내 시가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 않는다면 죽을 때까지 고치는 걸 멈추지 않겠다'고 했던 두보처럼, 고치고 또 고쳐서 좋은 시가 된다면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적 있다.


최동호는 그동안 짧으면서 그 안에 극적 드라마가 내재된 '극서정시'를 표방해왔다. 언어의 기교나 난삽한 관념으로는 시적 본질에 이를 수 없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그도 이번 시집에서는 여전히 짧은 극서정시와 함께 산문시도 시도했다. 그는 "극서정시에 대한 탐구 과정에서 확장과 축소를 시도해 보았다"면서 "산문시는 그 흔적"이라고 밝혔다.

"박쥐가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어 어두워지던 어린 시절 흡혈박쥐가 등 뒤에 달라붙어 비명을 지르며 꿈에서 깨어나곤 했다. 불길한 꿈이 되살아나 잠 못 이루던 젊은 날들의 공포는 사라졌는데 지금 우리 모두가 마스크 쓴 복면의 인간이 되어 유령의 도시에서 살고 있다.// 인간의 미래는 사라져 버리고 코로나 박쥐가 세상의 주인이다. 역병의 대유행은 신을 배반하고 바이러스를 조작한 인간들의 죄악에서 비롯된 것이며 자유로이 탈바꿈하는 변형 바이러스는 인간에게 백색의 마스크를 강요하고 있다.// 신의 율법을 부정한 코로나 박쥐 인간이 마스크 뒤에서 탐욕의 눈동자를 반짝거리고 있다.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은 결국 탐욕이 지배하는 유령의 도시를 벗어나지 못하고 박쥐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가야 한다. 영성의 빛과 소리에 귀 기울여 경건한 생명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침묵을 지키며 바라보고 있던 하늘이 보낸 이 준엄한 계시를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신의 축복을 배반한 인간은 파멸의 공포에 전율하는 존재가 되고 말 것이다."('박쥐 인간들')

감염병 사태의 본질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시편이다. '마스크를 쓴 복면의 인간'이 '유령의 도시'에서 '신의 율법을 부정한 코로나 박쥐 인간'으로 살고 있는 형국이다. 결국 탐욕이 지배하는 한, 영성의 빛과 소리에 귀 기울여 생명의 소리를 경청하지 않은 한, 신의 축복을 배반한 인간은 이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준엄한 경고를 하고 있다. 그는 이 산문시 형식에 대해 "짧은 시로는 표현되지 않은 것들이 있고 전후 문맥상 오해를 피하기 위해 메시지를 기록할 수밖에 없는 경우들이 있다"면서 "이 또한 시 한 편을 수십 쪽 나열하는 게 아니라 한두 쪽 안에서 축약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밤늦은 시간 편의점/ 불빛 속에서/ 라면을 후루룩거리는 사람 가끔// 창밖을 향해 무심코 고개를/ 들어보지만/ 아무것도 보지 않는 사람// 따뜻한 국물은 목구멍으로/ 흘러내리고 치밀어 오르는/ 작은 덩어리 하나/ 면발처럼 의자 아래 굴러 떨어진다// 박제된 올빼미 눈동자/ 창밖으로/ 쏟아지는 하얀 불빛 그림자('편의점 눈동자')

▲짧은 '극서정시'를 추구해온 최동호 시인은 이번에는 산문시 형식도 끌어들여 '확장과 축소'를 시도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최동호의 이번 시집은 이전과 달리 세속 도시의 인간들을 보다 가까이서 들여다보고 연민의 시선으로 감싸 안는 시편들이 눈에 띈다. 그는 "내 시는 구도적인 근원을 향한 보편성 추구가 한 축이라면 또 하나는 실제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동시대를 살고 있는 인간들 이야기가 또 한 축"이라면서 "보통 나이가 들면서 삶으로부터 멀어지는데 역으로 더 가까이 가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가 동시대의 사람들에게서 연민을 느끼는 건 젊은 날에 비해  '슬픔'에 관대해졌기 때문일까.  

비닐은 소리는 크게 나도 물에 젖지 않는다./ 젊은 날 슬픔에 젖지 않기를 바라고 살았다.// 어느 틈에 구겨지는 비닐같이 소리는 커도/ 슬픔에 젖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고 말았다.('슬픔을 모르는 사람')

"젊었을 때 슬픔을 모르고 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는 건 사실 감정의 사치죠. 그 시절에는 슬픔에 지는 게 싫었거든요. 그걸  극복하고 싶었고, 좀 더 이성적인 쪽으로 생각하고 있던 시절이니까요. 나이 들어보니 인간이라는 거는 역시 그런 슬픔을 안고 사는 존재고, 그런 슬픔이 없다면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까지 해요. 시라는 것도 인간이기 때문에 있는 거고, 인간이 아니라면 시도 필요 없죠."

인간은 귀신을 부리고/ 귀신은 인간을 부리고/ 인간과 귀신은 꽃 하나 사이에 두고/ 부채를 펼쳐 들면 나비가 난다/ 요령 소리는 저만치서 웃고 있다/ 귀신은 인간을 부리고/ 인간은 귀신을 부리고/ 귀신은 늙지 않아도/ 인간은 꽃 하나 사이에 두고 시들어/ 이승과 저승사이/ 나비가 꽃을 찾아 하늘을 날아가고/ 저승은 이승이 되고/ 귀신은 인간이 되어/ 생과 사는 하나의 나비가 된다('요령 소리')

이번 시집에는 '귀신 시'들도 여럿 보인다. '인간은 꽃 하나 사이에 두고 시들어/ 이승과 저승사이/ 나비가 꽃을 찾아 하늘을 날아가고' 급기야 '생과 사는 하나의 나비'가 되어 날아간다. 귀신도 무릎을 칠 법하다. 어쩌다 그동안에는 전혀 보여주지 않던 귀신인가. 그는 "고교시절 무렵까지 귀신의 소리를 들었고 그것을 쫓아내느라 상당히 힘들었다"면서 "나름대로 격렬하게 싸우면서 떼어낸 건데 이전에는 이런 이야기를 발설하지 못했지만 이제 그런 것도 표현할 수 있는 나이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린시절 샤머니즘과 불교의 세계가 혼융된 정서가 작동했던 탓"이라며 "미당도 학질에 걸려 저승 문턱까지 다녀와 '귀신 시'들을 여럿 썼다"고 덧붙였다. 

▲최동호 시인은 '시로 읽는 금강경'을 만들어놓고 시가 풀리지 않거나 마음이 번잡할 때마다 들여다본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최동호는 우리 말로 풀어서 쉽게 읽을 수 있는 '시로 읽는 금강경'을 만들어놓고 시가 풀리지 않거나 마음이 혼탁할 때 읽곤 한다고 했다. 우주의 빛 속에서 생명의 본질을 꿰뚫는 말씀을 담은 경전을 수없이 읽으면서 깎고 다듬다 보면 ' 물방울 한 점, 가로지르는 햇살 받아/ 푸르게 변신하는/ 물방울 부처' 같은 시편도 떠오른다. 언어를 매개로 구도의 길을 가는 재가수도자가 따로 없다. 귀양살이는 언제 끝나는가.

"이 머나먼 지구별까지 귀양 온/ 나의 치명적 죄명은 시인/ 물귀신 도깨비들도 놀라자빠질/ 절대의 시를 써야 멍에를/ 벗는다는 운명/ 귀양살이하는 나날의/ 꿈속에서도 목 졸리고 혀를 깨문다"('치명적인 죄명')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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